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독립운동가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사람이 김구입니다. 김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침체기에 접어들었을 때 꿋꿋하게 임시정부를 지켜냈던 사람도 김구였습니다.
김구가 지켜내려고 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어떻게 수립되었고, 무슨 활동을 했을까요? 오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전반부 활동을 정리해보겠습니다.

3.1 운동의 결실, 대한민국 임시정부
3.1 운동을 전후해서 국내외 임시정부가 여려 군데에 수립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3군데인데,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결성된 대한 국민 의회, 지금의 서울인 경성에서 조직된 한성 정부,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된 상하이 임시 정부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아무리 임시라고 하더라도 정부가 여러 개면 활동이 분산되겠지요? 그래서 통합 논의를 거쳐 1919년 9월 마침내 통합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합니다.
위치는 일본의 영향력이 약하고 외국 공사관이 많이 모여있어 외교 활동에 유리한 중국 상하이로 결정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도 독립운동을 하는 방법을 두고 무장투쟁론과 외교론, 실력양성론 등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중 초기 임시정부는 외교론에 초점을 맞췄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삼권분립에 기초한 민주공화제를 채택하였고, 대통령에 이승만, 국무총리에 이동휘를 선출합니다. 아까 말했듯, 임시정부는 외교활동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래서 외교활동을 위한 기관으로 미국에 구미위원부를, 프랑스에는 파리위원부를 두었습니다.
국내 활동을 위해서 연통제라는 비밀 행정 조직을 운영하였고, 교통국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기관지로는 독립신문을 발간하였습니다. 무슨 활동을 하든 돈이 필요합니다. 임시정부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독립공채를 발행했습니다. 독립공채는 돈을 빌려준 대가로 준 증서인데, 나중에 독립이 되고 나면 그 금액만큼 이자를 붙여서 다시 갚아주겠다는 증서입니다. 마음은 있으나 용기가 없었던 사람들은 독립공채를 사주어 마음을 보탭니다.
독립운동사 사료를 모으기 위해 임시사료편찬회를 설립하여 한일관계사료집을 편찬하는 등 문화사업도 진행했습니다.
무엇보다 지역, 이념, 독립운동노선을 초월하여 힘을 합쳐 하나의 조직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의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서 보면면, 언제든지 분쟁이 일어날 씨앗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위기에 빠진 임시정부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20년 연통제와 교통국이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고 맙니다. 이후 임시정부는 자금난에 빠지게 되었고, 임시정부의 주력노선이었던 외교활동은 뚜렷한 성과가 없었습니다.
임시정부의 활동 방향을 놓고 1923년 국민대표회의가 열렸습니다. 신채호를 비롯한 창조파는 이 회의에서 임시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자고 주장했습니다. 안창호를 비롯한 개조파는 문제점을 개선하여 임시정부를 유지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이렇다 할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회의는 끝나버립니다. 그리고 임시정부에 실망한 많은 이들이 임시정부를 떠났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25년 이승만이 국제연맹에 위임통치를 부탁했다는 사실이 알려집니다. 오늘날의 국제연합에 해당하는 국제연맹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구성되었습니다. 이승만은 일본 대신 국제연맹이 우리나라를 위임하여 통치해달라는 부탁을 한 것입니다. 신채호는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었다'며 이승만을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오랫동안 침체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김구는 쓸쓸히 임시정부를 지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임시정부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1931년 한인애국단이라는 의열 단체를 조직하고 중국의 관심과 지원을 받는 데 성공합니다.
원포인트 레슨
1. 3.1 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은 세트입니다. 한 묶음으로 정리해두세요.
2.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조직과 활동을 키워드로 알아두세요.
3. 국민대표회의의 시기와 창조파vs개조파를 알아두세요.
기출 풀이
[2022-6월 모의평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키워드를 숙지했다면 쉽게 풀 수 있는 문항입니다. 자료의 ‘구미 위원부’, ‘3.1 운동을 계기로 상하이에 수립’, ‘독립 공채’ 등을 통해 (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비밀 조직으로 연통제와 교통국을 조직하여 운영(⑤)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단골 키워드는 연통제와 교통국, 구미위원부, 독립공채 등입니다. 또, 수립 배경인 3.1 운동은 세트로 묶어서 알아두세요.
[2021-6월 모의평가]
국민 대표 회의가 개최된 시기를 물어본 문항입니다. 자료의 ‘임시 정부의 활동이 침체에 빠지자’, ‘개조파’, ‘창조파’ 등을 통해 이 회의가 1923년에 개최된 국민 대표 회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표 문항은 수험생이 부담을 느끼는 유형입니다. 연도를 다 외우고 있으면 아주 쉽게 풀 수 있는 유형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연도를 다 외우고 있지 않아도 사건의 발생 순서만 인과적으로 파악해도 충분히 풀 수 있습니다.
국민 대표 회의는 적어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여야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 운동을 계기로 세워졌으므로 3.1 운동보다는 뒤입니다. 이렇게 추리를 했다면 쉽게 (마)를 정답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