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을 하다가 'Korea'에서 왔다고 하면, 'South Korea'인지, 'North Korea'인지 물어봅니다.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한 모양입니다.
우리는 분단된 이후에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분단 체제가 너무나 익숙합니다. 그런데, 긴 역사 속에 비춰보면 분단된 것은 고작 70여 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100년이 채 되지 않은 셈이지요.
우리나라는 왜 분단이 되었을까요? 힘들게 일제강점기에서 광복을 맞이하고는 왜 그리도 빨리 분단이 되었을까요?
그 사연을 이해하려면 광복되던 1945년 8월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유럽에서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가 자살하면서 독일은 1945년 5월에 일찌감치 연합군에 항복합니다. 2차 세계 대전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추축국이 되어 전개되었는데, 가장 먼저 이탈리아가 항복하고 독일이 항복하면서 일본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지금의 러시아, 당시의 소련은 유럽 전선에서 독일을 상대하느라 전력을 많이 소비했습니다. 이제 전력을 동쪽으로 돌려 일본을 상대해야 하는데,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면 세계는 미국과 소련 두 세력으로 재편되리라 판단했습니다. 최대한 전력을 아껴놓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소련은 대일전 참전을 차일피일 미룹니다.
그러다가 8월 9일 마침내 일본이 만주에 세워놓은 만주국을 공격하면서 남진을 시작합니다. 일본군의 주력부대는 당시 태평양에서 미군을 맞아 고전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소련은 빠른 속도로 남쪽으로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한반도에서 일본군을 몰아내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태평양에서 일본과 전투를 벌이고 있던 미국은 이 상항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까딱하면 소련군이 한반도 뿐만 아니라 일본 본토까지 점령할 판이었기 때문입니다.
소련은 생각보다 전력이 약한 일본군을 몰아내면서 조금 머쓱했습니다. 미군이 일본군의 주력부대를 태평양에서 붙잡아두었기 때문에 손쉽게 남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미국이 소련의 '무임승차'를 트집잡아 일본은커녕 한반도 점령을 반대하면 어쩌나 약간은 걱정도 되었습니다.
이렇게 미국과 소련이 각각 다른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미국이 소련에게 비밀리에 제안을 하나 합니다.
그 제안은 바로 한반도 분할 점령입니다.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북쪽까지만 점령하고, 그 남쪽은 미국이 일본군을 무장해제하고, 일본은 미국이 단독 점령한다는 것이 그 제안의 핵심이었습니다.
소련 입장에서는 한반도를 절반이나 점령할 수 있어서 마다할 이유가 없어 미국의 제안을 수락합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은 물론 한반도의 절반까지 점령할 수 있어 안도하며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의 저항은 미국의 예상보다 훨씬 집요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원자폭탄을 두 번이나 사용합니다. 이로써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되었고 전쟁이 끝나게 됩니다.
미군은 이로부터 약 3주나 더 지난 9월 9일에야 한반도로 들어옵니다.
해방을 맞이했지만,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에 각각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하게 된 상황, 이후 한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기존에는 현대사에서 3~4문항 출제되어 출제비중이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4~5문항으로 출제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주제별로는 정부수립과 6.25전쟁, 역대정부, 민주화 운동, 통일노력에서 각 1문항씩 출제되었습니다. 다만, 현대사 출제 경향도 국내 정치 상황에 영향을 받아서 남북 관계가 좋을 때와 안 좋을 때가 다르고, 집권당에 따라서도 다소 차이가 납니다. 표를 보면 알겠지만 최근에는 박정희 정부가 자주 출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