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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간섭기와 공민왕

우공 박순화 2023. 8. 2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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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존재했던 나라 중 가장 거대했던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요? 정답은 바로 몽골제국입니다. 몽골제국은 직할지와 4개의 칸국으로 쪼개지기 전까지는 동쪽으로는 한반도에서부터 서쪽으로는 동유럽 오스트리아 국경지역까지 굉장히 넓은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이 원정길에 저항했던 나라들은 무참히 몽골기병의 말발굽 아래에 쓰러져갔습니다.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몽골군대와 30~40여 년 동안 맞서 싸운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려입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몽골의 침입과 항쟁

원래 몽골족은 몽골 고원에서 흩어져 살고 있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테무친이라는 강력한 지도자에 의해 부족이 통일되어 거대한 세력을 이루게 되었고, 중국 북부를 차지하고 고려를 압박했던 금나라를 멸망시키면서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이 즈음 중국과 고려 국경에서 몽골 사신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는데, 몽골은 이 사건을 구실 삼아 군대를 파견해 고려를 공격해 왔습니다. 이때부터 30~40여 년 고려는 몽골 군대에 맞서 싸우게 됩니다.

 

세계 최강의 군대를 맞아 이렇게 오랫동안이나 싸우다니 고려 군대가 정말 강력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닙니다. 당시 최 씨 정권은 몽골군대가 물에 약할 것이라 여기고 고려 왕실을 강화도로 옮겨버립니다(강화도 천도). 나라의 최고 권력자와 정부가 백성들을 버리고 바다 건너 강화도로 숨은 것이지요. 그럼 대체 누가 몽골 군대에 맞서 싸웠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싸웠을까요? 바로 우리 가족, 우리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어디 다른데 피난 갈 상황도 아니었고요.

 

몽골과의 전쟁 중에 국토는 황폐화되었습니다. 신라 시대의 걸작품인 황룡사 9층 목탑과 거란의 침입에 맞서 판각되었던 초조대장경도 이때 불타 없어져버렸습니다. 이에 고려는 다시 한번 부처의 힘을 빌려보기로 하고 대장경을 다시 만듭니다. 글자가 모두 8만 여자에 달하는 이 대장경판은 합천 해인사에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바로 팔만대장경판입니다.

 

전쟁이 계속되고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고려 왕실은 더 이상의 저항은 어렵겠다고 판단하고 몽골과 강화하기로 합니다. 고려와의 관계가 불안했던 몽골도 이를 받아들여 고려 왕실은 다시 개경으로 환도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최 씨 정권이 마침내 무너졌고, 이들의 군사조직인 삼별초가 개경 환도에 반대하며 계속해서 몽골군과 전투를 이어갑니다.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진도로, 다시 제주도로 옮겨가며 항전했지만 결국 진압되고 말았습니다.

 

원 간섭기의 시작

몽골과 강화를 맺은 고려는 몽골군대에 맞서 싸운 나라 중 멸망하지 않고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원으로부터 이런저런 내정 간섭을 받는 원 간섭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고려 왕은 즉위하기 전에 일정 기간 원에 머무르며 교육을 받아야 했고, 원 공주와 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이로써 고려는 원의 사위국가, 즉, 부마국이 되었습니다. 또, 기존의 '~종' 대신 '충~왕'으로 원에 대한 충성을 왕의 명칭에 표시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왕실에서 쓰던 용어와 정치 기구의 명칭 등 관제가 격하되었습니다.

 

원은 고려에 정동행성을 설치하고 정치에 개입하였으며 다루가치라 불리는 관리를 파견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동북 지역에 쌍성총관부, 서북 지역에 동녕부, 제주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여 고려 영토를 직간접적으로 통치하였습니다. 고려는 정기적으로 공물과 공녀를 바쳐야 했습니다. 공녀는 정기적으로 원에 바쳐야 하는 여성을 의미합니다. 이중 기 씨 성을 가진 여인이 원 황제의 황후가 되었는데, 바로 기황후입니다. 기황후의 오빠 기철은 여동생을 등에 업고 고려 국내에서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원 간섭기에는 왕의 측근 세력, 원에 자주 다녀온 통역관 등이 새로운 지배층으로 등장하였는데, 이들을 권문세족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양민의 토지를 불법으로 빼앗아 대토지를 소유하며 음서를 통해 관직에 올라 권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공민왕의 개혁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해가 떴으면 지듯, 강성했던 원나라도 황위 계승 분쟁과 한족의 반란 등으로 내부에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한족이 몽골을 다시 만리장성 북쪽으로 쫓아버리고이 중국 대륙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격동기에 왕위에 오른 사람이 바로 공민왕입니다. 공민왕은 원간섭기 이후 '충'자를 붙이지 않은 첫 번재 왕입니다. 공민왕은 원이 쇠퇴하고 명이 중국의 새 주인이 된 국제 정세를 이용하여 반원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격하되었던 관제를 복구하고 정동행성을 폐지해 버렸습니다. 그때까지 남아 있던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빼앗겼던 영토를 되찾기도 합니다. 공민왕의 쌍성총관부 공격에 큰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 바로 이자춘입니다. 이자춘의 아들이 누구일까요? 아마 깜짝 놀랄 것입니다. 바로 조선 태조 이성계입니다. 이성계의 세력 기반은 이때부터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민왕은 기황후의 오빠 기철로 대표되는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고려에서 유행하던 변발을 비롯하여 몽골풍을 금지하는 등 자주성 회복을 위해서도 힘썼습니다.

공민왕은 새로운 유학, 성리학을 공부하고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신진사대부를 과거를 통해 등용하여 권문세족을 견제하였습니다. 이때 세력을 형성한 신진사대부들은 권문세족의 비리를 비판하고 고려 사회의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습니다.

 

공민왕은 승려 신돈을 등용하여 사회경제적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무신정권기를 거쳐 원 간섭기에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원래 주인에게 되찾아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조사하여 다시 양인으로 풀어주는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 그리고 신흥무인의 활약

하지만 공민왕이 사망하면서 고려는 다시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바닷가에는 왜구가, 북쪽에서는 중국에서 홍건적이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이때 이들을 물리치며 활약한 새로운 무인세력, 즉, 신흥무인세력이 활약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최영과 이성계가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이후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였고,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급진파(혁명파) 신진사대부들이 이성계를 추대하여 고려는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고 조선이 새롭게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원포인트 레슨

1. 몽골의 침입부터 공민왕의 개혁까지 주요 사건들의 순서를 정리해두세요.

2. 원 간섭기의 키워드를 정리해두세요. 당시 볼 수 있는 모습을 자주 물어봅니다.

3. 공민왕의 개혁을 키워드 중심으로 정리해두세요. 전민변정도감-쌍성총관부 공격이 세트입니다. 자주 출제되는 키워드이니 한 묶음으로 알아두세요.

 

기출풀이

[2023-대학수학능력시험]

 

몽골군의 침략의 영향을 물어본 문항입니다. 자료의 ‘사신의 피살’, ‘몽골군’ 등을 통해 밑줄 친 ‘침략’이 몽골군의 침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최 씨 정권은 고려 왕실과 함께 강화도로 천도(④)했습니다.

자료가 좀 생소하지만 다 독해하고 이해하려고 애 쓸 필요 없습니다. ‘몽골군’이 핵심 키워드입니다. 침입 당시 강화도 천도-개경 환도-삼별초의 항쟁 순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을 잘 정리해두세요.

그동안 몽골의 침입은 잘 출제되지 않았습니다. 최근 새 교육과정에서 종종 보이는데, 자료가 생소할 뿐 난이도는 평범하니 너무 걱정 안해도 괜찮습니다.

 

[2022-대학수학능력시험]

 

원 간섭기의 모습을 물어본 문항입니다. 자료의 ‘다루가치’, ‘격을 낮추었다’(관제 격하) 등을 통해 자료 상황은 원 간섭기라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정동행성이 설치되었고, 쌍성총관부로 영토 일부를 잃었으며 정기적으로 공물과 공녀(⑤)를 바쳐야 했습니다.

원 간섭기의 키워드를 정리해두면 어려움 없이 풀 수 있는 문항입니다. 지난 교육과정에서 종종 출제되다가 최근에는 잘 보이지 않는 주제이긴 합니다만, 언제든 다시 출제될 수 있는 주제인만큼 잘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2023-7월 학력평가]

 

공민왕의 개혁 내용에 대한 문항입니다. 자료의 ‘전민변정도감’, ‘신돈’ 등을 통해 (가) 왕은 공민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공민왕은 원 쇠퇴기에 적극적인 반원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정동행성을 폐지하였고, 쌍성총관부를 공격(②)하기도 하였습니다.

전민변정도감과 쌍성총관부 공격은 세트입니다. 자료로 전민변정도감이 나오면 쌍성총관부 공격이 정답으로, 쌍성총관부 공격이 자료로 나오면 전민변정도감이 정답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함께 알아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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